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리스가와 아리스 (문단 편집) == 데뷔 이전 == '''[[덕업일치]]의 모범적 구현'''을 위한 듯한 인생을 살아왔다. 11살에 [[엘러리 퀸]]의 <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>을 읽은 후 줄곧 추리소설 작가를 지망해 왔다. 15세에는 장편을 써서 [[에도가와 란포]] 상에 응모하기도... 그러나 상에 당선된 적은 없었다. 작가 스스로 예전 일을 회고하면서 '다른 작가들은 자기처럼 에도가와 란포 상에 수차례 응모하면서 1차 통과도 못해본 사람은 없었'다고 밝히기도. 과를 보고 대학을 선택한 게 아니라 동아리를 보고 대학을 선택했다고 하는데, 추리소설 동호회 하나만 보고 [[도시샤대학]]에 입학했다. 꾸준히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습작을 병행[* <월광 게임>은 10년 이상 계속 퇴고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.], 동호회 기관지에 작품을 싣거나 신문에 [[엽편소설]]을 투고하여 싣기도 했다. 이 때 [[아유카와 테츠야]]의 소설을 좋아해서 팬레터를 교환하다가 서로 아는 사이가 되었는데, 당시 '철도 미스터리 앤솔로지'를 구상하면서 작품을 모으고 있던 [[아유카와 테츠야]]가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동아리 기관지에 투고했던 '색 바랜 선로 위의 시체'를 싣을 계획이라고 밝히자 "그거 제가 쓴 작품이에요!"라고 고백하면서 더욱 가까워지게 된다.[* 이 작품은 대폭 개고를 거쳐 1986년 출간되 '무인 철도 건널목(無人踏切)'에 최초로 수록되었으며, 이후 '''[[학생 아리스 시리즈]]의 단편집인 '에가미 지로의 통찰'에 수록되어있다.''' '월광게임'보다 먼저 집필된 최초의 학생 아리스 시리즈 작품이다.] 재미있는게 이 때 아유카와 테츠야와 '우에하라 마사히데'는 이미 아는 사이였지만, '아리스가와 아리스'라는 필명의 학생 작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추리소설 연구가인 야마마에 유즈루의 추천으로 싣었을 뿐인데, 그래서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여성인 줄 알고 '아리스 양'이라고 불렀다고 한다. 이후 아유카와의 호의로 그의 작품에 해설을 쓰기도 하면서, 이후 더욱 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의식이 강해진 아리스가와는 '에도가와 란포 상'을 타는 걸 목적으로 추리소설을 열심히 집필하여 '월광게임'을 완성한다. 이를 읽어본 아유카와가 "란포상을 타고 싶나요? 다른 출판사에서 추리소설을 모집할 예정인데 그건 어떤가요?"라고 제안했지만, 아리스가와가 꼭 란포상을 타고 싶다며 이를 거절하자 왠지 모르게 아유카와가 의미심장한 눈웃음을 짓었다.[* 이 때가 1986년인데, 사실 정황을 보면 아유카와는 당시 일본 추리소설계의 신인상 경향상 아리스가와와 같은 작풍으로는 신인상을 타지 못할 것을 예상했다고 볼 수 있다. 불과 6년 전에 시마다 소지의 [[점성술 살인사건]]도 수상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심사위원들이나 평론가들이 온갖 폭언을 쏟아내서 아유카와도 격노했을 정도다.] 아리스가와 입장에선 당시 아유카와같은 본격판의 대작가와 친해진 것 만으로도 영광이라서 그의 힘을 빌려 데뷔하는 것은 그냥 발상 자체가 없었고, 무엇보다 상을 타서 데뷔하는 것에 대한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고집스럽게 란포상에 붙을 수 있도록 작품을 다듬었다. 그러나 이후 1차 통과도 못 하고 떨어지자, 기다렸다는 듯이 아유카와가 전화를 걸어 도쿄소겐샤의 토가와 야스노부 편집자에게 아리스가와를 소개하고, 토가와가 "좀만 더 다듬어서[* 임팩트가 있는 장면이 부족하다는 게 이유였다고.] '아유카와 테츠야와 13의 비밀' 중 한편으로 하는 게 어떻겠나"고 승낙하면서 작가 데뷔에 성공한다. 이 때야 아리스가와는 아유카와가 과거에 말했던 출판사가 도쿄소겐샤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. 두 사람의 훈훈한 인연은 내내 이어졌으며, 아유카와 테츠야 사망 후 고인의 뜻에 따라 장례식도 생략한 채로 화장한 유골을 나른 두 사람 중 한 명으로 뽑혔었다.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'학생 아리스' 시리즈를 보면 아유카와 데츠야에 대한 흔적들이 조금씩 드러나기도 한다. 대학 졸업할 때까지 데뷔를 못 했기 때문에, 마음은 소설가 지망생이지만 대외적으로는 [[백수]]가 된 적이 있다. 때문에 생계 연명을 위해 서점에 취직, 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밤에는 필사적으로 글을 쓰면서 노력하는 천신만고 끝에 1989년 드디어 데뷔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